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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문학적 요소 살펴보기 #3 - 림버스 컴퍼니

* 주의사항

  본 분석문은 '프로젝트 문'의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림버스 컴퍼니' 의 세계관을 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에,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최소화 할 예정입니다만, 이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이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본 세계관은 꽤나 많은 트리거 워닝이 존재하는 세계관입니다. 이에 대해 불쾌감을 최소화 할 예정이지만, 그럼에도 불쾌하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저작권 및 사진은 프로젝트 문에게 있습니다. 

 

저번 글에서는 프로젝트 문에 대한 세계관과. 로보토미 코퍼레이션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속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인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라는 게임에 대한 세계관 정리는 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아주 간단적인 이야기와 함께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한다.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흐름. 그러니까 소개할 '림버스 컴퍼니' 쪽의 문학적 요소만 살펴볼 예정이며,림버스 컴퍼니가 전부 끝나고 난 뒤에, 다른 작품들의 모티브와 그리고 분석을 더욱 더 자세히 할 예정이다. 오로지 이야기의 흐름만을 집중적으로 할 예정이며, 더욱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작품을 플레이하길 바란다. 

 

 이런 기나긴 이야기들을 거쳐, 우리들은 드디어 2023년 2월에 출시된 프로젝트 문의 3번째 후속작. 림버스 컴퍼니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아직은 게임으로서 부족한 것이 있고, 문학으로서도 무언가 아쉬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프로젝트 문의 가장 근본적인 단점 중 하나가 바로 고유명사와 스토리 진행 방식이다. 

  실제로 전 작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에서 가장 비판받은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고유명사의 활용이다. 게임 초반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나, 게임은 초반부터 메니아가 아니면 알아 듣기 힘든 단어들을 나열하며 세계관을 대충이나마 소개한다. 

  그리고 전개 방식은 마치 끝나지 않는 커튼콜과도 같다. 무대의 배우가 자신의 역활을 소개하고 박수를 쳐야 하는데, 앵콜을 계속 하는 느낌을 주는 형태의 스토리다. 때문에 그 여운은 강하게 느껴질지언정, 스토리의 질은 떨어지는 편이다. 허나 그것을 어느 정도 수정한 것이 다름아닌 림버스 컴퍼니라고 할 수 있다. 

 

1. 게임 외부적으로 보는 문학 요소 살펴보기

 

해당 이야기를 풀어가는 12명의 인물들

 '단테의 신곡'에서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진 죄수들과 함께, 세계 12개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대부분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은, 죽고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마치 '지옥도'를 걸어가는 상황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실제로 주인공의 이름 또한 '단테' 이며, 그 길잡이 또한 '베르길리우스'라는 이름이 있다. 이는 모두 단테의 신곡을 담아낸 이야기이며, 실제 쳅터 이름도 '지옥 편'이기에, 단테의 신곡의 지옥, 연옥, 천국 처럼 파트가 나눠질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총 4개로, 그레고르, 로쟈, 싱클레어, 이상의 이야기 뿐이다.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만큼, 문학의 디테일을 담아내는 그런 노력을 이곳에 담아내고 있다. 외부적인 요소로 주인공의 이름이 '단테' 라는 것과 동시에, 캐릭터의 인물들 또한, 대부분 문학을 대표하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야기에서 인물을 살려낼 때, 항상 '별을 본다' 라고 하는데 단테의 신곡 지옥의 첫 구절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앙,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서움으로 적셨던, 골짜기가 끝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보았고, 이미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 꼭대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

- 단테의 신곡 첫 구절-

 

2. 게임 소개

 

주인공 '단테'가 수감자를 계속 되살려내기 위해 마주하는 '지옥의 문'

 

  '별을 바라본다.' 라는 것 자체와 동시에, 지옥에서의 형벌은 대부분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다시 되돌려받는 형식을 이용하여 수감자들이 자신이 지은 죄와 그리고 삶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이 섞인 사건을 해결하여 목표를 그런 이야기 자체가, 마치 단테의 신곡 그 자체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을 운반하는 이들의 이름 또한 ' 것을 통해서, 이 이야기는 마치 단테의 신곡 자체의 흐름을 무언가 쉽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단테의 신곡에 있는 지옥도의 층에 맞는 죄를 저질러, 그것을 마주해야 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각 등장인물은 어떤 모티브를 알아보겠다. 어떤 이가 단테의 신곡 속의 지옥에 들어갔는지를 우선 문학적인 작품의 모티브가 무엇인지를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 물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참여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게임에 그리 흥미 없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기에 이런 글로 남긴다.

각 등장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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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보면,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있어선 익숙한 이름이 보일 것이다. 특히나 '이상'과 '돈키호테' 라는 이름 자체는 어떤 문학을 읽은 사람이라도 바로 알 것이다. 여러가지 익숙한 이름들이 보일 것이고, 난생 처음 보는 이름 또한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파우스트라는 이름 자체도 엄청나게 익숙할지도 모른다. 가장 우리들에게 익숙하고, 우리들의 눈에 익은 그런 이름 자체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욱 더 자세히 우리들은 살펴봐야 한다. 어떤 문학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등등.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 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우리나라의 시인이다. 가장 난해한 시로 유명한 오감도를 작성한, 그런 시인이다. 가장 유명한 말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라는 날개의 첫 문장의 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난해한 시를 작성한 특성에 맞춰, 서번트 증후군의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소통하기 힘들고 '이상'이라는 점을 이용한 말장난을 하며 난해한 말투를 쓰는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파우스트는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주인공의 이름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에 능통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는 점을 딴 만큼,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돈키호테는 미겔 더 세르반테스, 스페인의 작가가 작성한 돈키호테라는 작품에서 본딴 것이다. 백일몽, 그리고 연극투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동시에 과대망상적인 모습을 포함되어 있다. 동시에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정의라고 여겨두고 있는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이. 원작에서 돈키호테가 '기사'로서 할 수 있는 정의로운 것을 하려고 하는 행동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로슈는 일본 출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지옥변'의 소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요시히데(로슈)를 모티브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을 집착적으로 다루며, 자신의 외동딸을 화형당하게 하며 지옥의 형태를 현세로 끌어들이게 만들며, 뒤이어 자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캐릭터 자체도 사람을 죽이는 예술을 광적으로 집착하는 그런 캐릭터로 두고 있다. 

  뫼르소는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 뫼르소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봤을 때도, 결혼했을 때도, 감정을 그리 드러내지 않는다. 실제 게임 자체에서도 자신이 할 말만 짧게 해두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 또한 보여주기도 한다. 

 

  홍루라는 인물은 중국의 소설가 조설근의 홍루몽. 그 속에 있는 보옥이라는 의미의 가보옥이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꽤나 높은 집안에서 살아왔으며, 속세에 대한 궁금증을 보는 것이 있는데. 이 점을 '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한 모습을 보인다' 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집안이 풍미박산 난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소개할 때도 유복한 집안 환경에서 무엇이 부족해서 이리 나왔는지에 대한 묘사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히스클리프는 영국의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을 모티브로 만든 인물이다. 캐서린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캐서린의 사후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서 움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들고 있는 방망이에 복수라는 단어를 적어두는 것과 동시에, 높고 부자인 사람들을 증오하는 모습 자체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을 소개할 때 나지막하게 캐서린에게 다시 한 번 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마 복수를 위해서 지옥을 거닐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이스마엘은 미국의 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서 나오는 피쿼드호의 마지막 생존자인 주인공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 '그녀석을 잡기 위한' 강박 관념을 보이기도 하며, 뱃사람이라는 묘사를 꽤나 자세하게 한다는 듯, 꽤 입이 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작품에서는 남자로 묘사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여성으로 만들어낸 듯 하다. 

  로쟈는 러시아의 작품,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토대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원래 작품에서는 남성으로 되어 있고, 그 조력자가 여성이었으나. 이곳에서는 반대로 묘사되어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특이한 것이 있는데, 작가의 말기에 도박 중독이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돈과 도박을 밝히는 모습과 함께, 유배에서 8년동안 보인 조울증의 증상을 보이는 모습도 존재한다. 마치 '죄책감' 이라고 담겨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싱클레어는 스위스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상태다.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하며, 동시에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의존적이며, 심악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데미안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지 않은 상태라고 하고 있다. 즉 죄에서 계속 도망가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이는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말하도록 하겠다. 

  오티스는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사용한 가명의 이름이라고 한다. 과거사 자체가 열람되지 않아 그 이야기는 자세히 알 수 없어서 기다리긴 해야 하나, 오디세우스는 이기주의 인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교활한 모습을 통해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겨두고 있다는 점 자체가 어찌 보면 맞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그레고르는 체코의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원작의 그레고르 또한 군인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또한 퇴역군인으로 묘사가 되어 있고, 변신의 이야기처럼, 팔에 벌레의 팔이 달려 있다고 한다. 

악역 등장인물 (헤르만)울 필두로 한 이들

   게임에서는 당연히 악역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예시로 헤르만이나 가환, 구보 등등. 여러가지 문학을 요소로 하는 그런 것들이 인물로 등장한다. 아직 많은 것이 등장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문학의 인물로 이뤄져 있거나 작가의 형태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섞어 놨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3. 1장. 속하지 않는

 

  전체적인 스토리

  https://youtu.be/5xTlNbHGp5o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1장은 그레고르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원작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여러 방향으로 해석된다. 가족들은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그는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쉬는 시간도 반납해 가면서 일했던 그에게 가족은 의지했고, 그는 회사에서 유의미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유의미함은 그가 돈을 벌어오는 동안에만 유지되었기 때문에 그가 벌레가 되지 가족들은 그를 걱정하고 동정하다가 무관심해지다가 마침내 그가 죽기를 바라게 된다.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방을 안락하게 여기다가, 방을 나오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르려다가, 여동생의 발언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다가 방에 머무는 길을 선택한다. 이후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솜씨를 칭찬해 주기 위해 밖에 나왔다가 손님들이 혐오감을 보이고 도망친 뒤에 그는 스스로 방 안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서의 '벌레'는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데,  병증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후천적인 장애로 해석된다는 말이 있다. 

 

  배경 자체가 1차 세계대전의 근방이었음을 통해 벌레는 어찌 보면 인간성의 상실에 대해서, 그저 역활만을 수행하는 삶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다르다. 그것은 독자 개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살펴보기 전에 이 게임이 어떻게 문학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게임상에서 그레고르의 가족은 어머니인 '헤르만'이라는 인물만이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그 외의 인물에 대해서는 성격이나 성질을 알 수 있을 만한 소재가 등장하진 않는다. 그저 동생이 있다는 언급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작중에 사과를 잘라내어야만 방으로 나갈 수 있다는 묘사가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자신의 쓸모가 증명되어야 나갈 수 있다'라고 표현된 상태다. 원작에서의 그레고르가 등에 박힌 사과가 썩어 들어 죽었듯이, 그는 영원히 방을 나서지 않고 죽을 수도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살아가고 싶다' 라는 그런 욕망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보면 알겠지만, 이곳에서 마지막 몬스터의 형태가 '사과' 로 나온다. 다만 죽는 그 대상이 동행자인 '유리'라는 그런 차이점이 있다. 다만 마지막에 사과를 자르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소설의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첫 번째 장의 이름은 '속하지 않는' 자다. 전쟁이 끝나고 버려진 그레고르. 그리고 외형 자체가 달라져 완전히 사회에 속하지 않는 그런 것이 포함되어 있다. 유리 또한 잘나가던 대기업에 있었다 하더라도 몰락했기에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실직자이기에 똑같이 '속하지 않는' 쪽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레고르의 대변자의 역할을 '유리'라는 인물로 대변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유리와 그레고르는 서로 같은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작중에서 동의 하에 개조를 했냐는 질문은 동의 하에 인신 공양을 했다는 질문과 닮아있다. 그녀는 자신도 본 적이 없는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공포를 직면해야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그레고르 역시 어떠한 큰 목적의 결과물일 것이다.
 '우리라고 달랐을까.'라는 말 자체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헌신한 회사가 사라지자마자 그들은 사회에 맞지 않는 이질이 되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괴물에게 보내고 살아남는다. 그리고 신체를 변형시키며 이상한 물건에 적응시킨다. 이들은 대기업의 측면에서 본다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사회에서 어떨까. 사회에서는 그런 것 자체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쓸모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실제로 1장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생존'에 쏠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대변하는 이들이, 그레고르와 유리다. 그리고 점점 유리는 어두운 상태였다가 점점 밝아지고, 그게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지만. 이는 소설에서도 비스름하다. 원작 소설에서 그레고르의 여동생 또한 점점 밝아지고, 활동적이며, 그레고르의 대체제가 되어가고 있는 묘사가 나온다. 이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 과연 그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이곳에서 인간은 어찌 보면 연료이자,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톱니바퀴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렇기에 무능하면 교체되고, 죽는다.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회사가 자신의 복지를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닌 잊어버리는 것 자체로 묘사하고 있다.

(스포일러를 위하여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결국 유리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이는 소설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고 개인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소설 속에서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 잠자는 누구도 제대로 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나마 찾은 것이 여동생의 연주를 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격려해주려 방을 나섰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리고 게임에서도 그레고르는 유리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그리고 실패했다. 이것 자체를 완전히 변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과는 유혹과 결실을 상징하지만, 그레고르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장치라고 판단한다. 사과를 자르면 자신은 자유가 되고, 그리고 언제든지 살아갈 수 있지만, 소설에서든, 게임에서든 사과를 자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유리가 죽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죽게 된다. 소설과 게임 자체에서도 같은 역을 하는 하나의 유혹과 죽음. 그리고 결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면서 도망치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악몽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원작의 형태를 완전히 변형시키는 것으로, 이야기를 완전히 재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과거의 명작을 어떻게 재창조하면 되는지에 대한 그 대표적인 예시로 완성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